작성일 : 12-01-03 14:20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7,186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기분으로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새해를 핑계삼아 지금까지 원하던 대로 잘 되지 않았던 일이 있다면 새로운 방법으로 좀 다르게 접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부부관계는 가족생활의 근간이 되고, 다른 인간관계형성과 직업적 업무효율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관계이기에, 새해에는 부부관계를 새롭게 다져보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뻑뻑하긴 해도 소통이 되고 있는 부부라면 좀더 매끄럽게 활력을 주고,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는 부부라면 먼저 부부관계에서부터 막힌 것을 뚤어보는 시도를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일 것 같습니다.

부부가 서로 소통하기 시작하면 각자가 가진 힘을 합친 것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여 가족이 당면한 어려움들도 뚫고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부부관계가 너무 악화되어버리면 부부 둘만의 힘으로 회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로의 가슴에는 상대방이 던진 비난과 모욕으로 돌이키기 힘든 상처들이 쌓여있고, 뭔가 대화를 시도해도 더 큰 상처를 받기 쉬워서 포기하거나 아예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이런 경우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부부관계의 회복을 시도해보겠다는 의지와 행동을 보일 수 있다면 그 부부에게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부관계가 악화되기 전에 관계의 이상 신호가 먼저 감지되는데 그것을 잘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편이나 아내의 태도나 말투, 행동에서 평소보다 신경질적이거나 퉁명스럽거나 말수 자체가 적어지면 그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왜 그러는지 물어봐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때 부드럽고 조용한 어투, 부드러운 표정이나 눈빛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화의 내용 자체보다 표정이나 어투가 어떤지가 상대방이 말하는 의도가 관심인지 비난인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리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우선 목소리를 부드럽고 조용하게 내게 되면 표정이 사납거나 못마땅하게 따라올 수가 없어 자연히 수그러들어 부드럽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부관계에서 뭔가 대화가 필요하여 시도할 때는 먼저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지어 시시비비를 가려야하거나 상대방에게 뭔가 요구를 하게 되더라도 시작은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하게 되면 말하는 사람도 비난하는 투가 아니라 좀더 조심스럽게 말을 하게 되어, 상대방이 더 경청하고 수긍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걸기가 관심이 아닌 비난이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으로 여겨지면 모처럼의 관심표현에 대해서 더 퉁명스럽거나 대화자체를 거부하는 반응이 나오기 쉽습니다. 특히 아내들의 경우 상담을 해보면, 남편이 평소 화가 나면 소리를 잘 질러 큰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떨린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들은 무엇보다도 목소리를 낮추어 작은 소리로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뇌에 대한 많은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구뇌와 신뇌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구뇌는 진화과정에서 더 먼저 형성된 오래된 뇌로 생명유지와 자기보전의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뇌의 기능에 의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보호욕구가 있어서 외부의 반응이 공격으로 여겨지면, 자극이 원시적인 구뇌로 전달되어 자기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방어체계가 형성되어 신체 각 부위에 전달됩니다.

옛날에 원시인들이 들판에 있다가 갑자기 맹수가 나타나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가까운 곳에 동굴이 있다면 무조건 뛰어들어 숨거나 나무가 있으면 타고 올라가 숨을 것입니다. 만일 숨을 곳이 보이지 않으면 사력을 다해 도망가거나 아니면 죽은 척이라도 할 것입니다. 그것도 안된다고 판단되면 죽을 각오를 하고 맞서싸우겠지요. 이 과정은 위협에 대한 자기보호를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며, 이러한 결정을 하는데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아내가 남편(혹은 남편이 아내에게)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대화를 시도하면서 구뇌를 자극하는 태도나 어투를 보여(눈길이 사납거나 목소리가 너무 크거나 어투가 부드럽지 못하거나 못마땅한 표정 등) 상대방이 본능적으로 자기 보호를 위한 공격적 내지 방어적인 태도(냉소적 태도, 무시하거나 거부하거나 나중에 얘기하자는 식으로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요. 아마 다시 대화를 시도하기가 쉽지 않게 되고, 부부관계는 점점 악화될 우려가 커집니다.

이러한 반응은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부부관계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가장 친밀해야할 관계라는 기대감 때문에 더욱 상처받기가 쉽고 상처주기도 쉽습니다. 내 마음과 다르게, 나의 의도와 달리 점점 멀어지는 부부관계를 느낀다면, 당장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남편과 아내에게 말걸기를 시도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부부관계 연구의 권위자인 존 가트맨 박사는 “16년에 걸친 ‘원만한 부부 생활의 비결’을 연구한 결과, 비록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서로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열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새해부터는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부부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작은 배려를 표현해보았으면 합니다. 배려의 마음은 표현되어야만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 그 시작을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표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아림 부부 상담심리연구소
소장 최혜숙